이건 ‘가방’이라고 부르기가 좀… 미안합니다. 가방이면서, 가방이 아니에요. 뭐랄까, 미래의 승려복, 혹은 종말 이후의 생존 장비 같은 느낌. 요즘 다들 깔끔한 미니멀 백팩, 아니면 투박한 아웃도어 백팩 메잖아요. 근데 얘는 등에 메는 게 아니라 아예 몸에 입어버립니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조끼의 실루엣에, 등판에만 억지로 주머니 몇 개 달아 놓은 모양새. 색깔이 일단 사람을 질리게 합니다. 그냥 블랙이 아니에요. 아주 깊고 지친, 무광의 ‘더스트 블랙’. 섬유 자체가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포켓이 듬성듬성 들어가 있어서, 이게 방한용 조끼인지, 아니면 그냥 수납 공간을 분할한 건지 헷갈립니다. 멀리서 보면 그냥 사람이 등을 잔뜩 웅크린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로고? 그딴 거 없습니다. 오직 기능과 형태만 남았어요. 주머니들은 다 제멋대로의 크기로 붙어있고, 그 주머니마다 덮개와 지퍼가 과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꼭 ‘당신이 이 속에 뭘 넣을지 예측할 수 없으니, 일단 모든 종류의 수납 공간을 다 만들어 놓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아요. 앞부분 스트랩 보세요. 끈 조절? 그런 쉬운 얘기가 아닙니다. 몸통을 복대처럼 감싸고, 어깨를 하네스처럼 짓누릅니다. 이걸 입고 거울을 보면 내가 도시를 헤매는 테크웨어 마니아인지, 아니면 사막을 건너는 고독한 워리어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게 이 옷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 가방의 진짜 웃긴 점은요. 실용적인 척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필요한 건 다 넣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굳이 ‘편하게’ 넣을 수 있게 만들진 않아요. 복잡하게 풀고, 열고, 다시 닫아야 합니다. 그 수고로움이 이 아이템의 존재 이유가 됩니다. 요즘 다들 가볍고, 똑똑하고, 튀지 않는 가방을 찾는데… 이상하게 전 이런 거에 끌립니다. 태가 안 나오는 듯 하면서도, 이걸 입으면 갑자기 내가 걸어 다니는 조형물이 됩니다. 이건 그냥 ‘가방’도 아니고 ‘패션’도 아닌, 그냥 내 몸의 일부처럼, 고독과 기능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외골격이랄까요. 이걸 입는 순간, 일상복이 갑자기 생존 장비가 되고, 가장 평범한 옷차림도 가장 기묘한 룩이 됩니다. 누가 봐도 이건 릭 오웬스의 옷장에 있어야 할 물건입니다. 길게 늘어진 티셔츠의 섬유, 축 늘어진 가죽, 그리고 그 특유의 그림자 아래에서 이 가방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못 입고, 그래서, 오래도록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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